[그래픽디자이너 강동성 칼럼] 1. 디자이너가 되어볼까?
[그래픽디자이너 강동성 칼럼] 1. 디자이너가 되어볼까?
  • 강동성
  • 승인 2019.12.16 23: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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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칼.럼.이.다.
시작을 어떤 주제로 하면 좋을까 며칠을 고민했다.

자극적으로 해볼까?
'그래픽디자인으로 돈 벌어서 포르쉐 탄다!' 뭐 이런? 요즘 사람 말로는 '#어그로를_끈다'라고 한다지…

채근담(菜根譚)에는 이런 말이 있다.
"최고의 문장은 남다른 기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쓰고자 하는 내용에 꼭 알맞게 할 뿐이며, 최고의 인품은 남다른 특이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간 본연의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그래, 나답게 글을 쓰자!'
온갖 상상에 자 미소를 지으며,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산자락에 위치한 나의 작은 작업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글] 디자이너 강동성
· 강동성그래픽 대표  

사실 나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는 신문에 신차 광고가 나오면 자동차 부분만 오려서 스크랩을 했었다.차도 좋아했지만, 펜으로 차를 '샥샥, 쓱쓱' 그려나가는 디자이너의 모습이 아주 멋있었다.

우리 집은 엄마가 아빠보다 먼저 운전을 시작하셨다. 당시만 해도 여성 운전자가 많이 없었다. 생계를 위해 짐을 실을 수 있는 차가 필요했고, 도전적인 엄마는 픽업트럭을 첫차로 사서 열심히 일을 하셨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엄마를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거래처가 곳곳에 있었기에 보조석에 앉아 새로운 동네를 구경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또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재밌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쫄쫄쫄 엄마를 많이 따라다녔기 때문인지, 가끔씩 고향에 내려가면 당시의 어르신들이 '너가 그 꼬맹이야?'라고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다.

 

▲ 우리집 첫 차, 포니2 픽업
▲ 우리집 첫 차, 포니2 픽업

국산차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업트럭이다. 1976년 출시되었고 1882년 페이스리프트인 포니 2가 나왔다. '포니'는 말의 한 품종으로 조랑말을 뜻한다.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1938, 이탈리아)가 운영하는 이탈디자인에서 디자인했다.

지난 60여 년간 200여 대가 넘는 자동차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쥬지아로는 20세기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로 불린다.

우리 집 포니는 위 사진처럼 하얀색이었다. 픽업이지만 차체가 낮아 물건을 싣고 내리기가 편했다. 여자인 엄마가 사용하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막연한 꿈을 뒤로하고 중학교 때는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전교 1등도 가끔씩 하였으니 아무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는 학생이었다.

선생님들도 나름 귀엽게 봐주셨기에 혹시 말썽을 부리더라도 은근 슬쩍 봐주시는 게 느껴졌다. 체육시간에는 축구, 농구, 배구하느라 신났고, 학교 마치면 학원 가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떡볶이 먹느라 신났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하루하루가 신났다.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신났던 시기였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각 학년별 1~2명 정도를 뽑아 미술 선생님이 사군자를 가르쳐주셨다.

당시 미술 선생님은 사군자로 유명하신 분이셨다. 사군자(?)반인 우리는 남들보다 1시간 일찍 등교해서 아침 조회가 시작될 때까지 사군자를 그렸다. 3년 간 쭉 사군자 반에서 그림을 그렸더니, 도 대회는 물론 전국 대회까지…졸업할 때쯤엔 상장이 30개쯤 됐다.

한국화, 특히 사군자의 가장 큰 특징은 여백의 미(美), 즉 절제의 철학이다. 어린 시절 사군자를 했던 경험이 지금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 절제의 미학, 사군자
▲ 절제의 미학, 사군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각 한자를 따서 매난국죽(梅蘭菊竹)이라고 부른다. 많은 식물들 중 이 네가지 식물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각각 높은 기상과 품격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지조와 절개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던 유교 사회에서는 어떠한 고난과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꽃을 피우는 사군자가 선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서양화는 캔버스를 꽉 채워서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경향이 크지만 동양화는 여백을 일부러 남기면서 활용한다. 개인적으로는 절제의 미학이라 생각한다. 넘침이 아닌 절제함으로써 얻어지는 긴장감과 기대감은 화려함이 주는 풍족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렇게 신나는 중학교 3년을 보내고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생애 처음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나였기에 미술 선생님께 진지하게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 저 예고를 가고 싶습니다."

반기실 줄 알았던 미술 선생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우선, 성적이 아까우니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다시 천천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미술 선생님의 한 마디에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그렇게 쫄래쫄래 남들이 그렇듯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당시 여러 사상 중에서도 특히 노장사상을 좋아했던 나는 마음의 속박됨이 없이 나의 진로 역시 물 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를 희망했다. (다음 편에 계속)

[크리에이티브 이코노미 = 강동성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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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2019-12-19 21:54:45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칼럼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