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현 연출은 연극 아닌 육아] 결혼이 현실?이라면 육아는 '체험 삶의 현장'!
[송시현 연출은 연극 아닌 육아] 결혼이 현실?이라면 육아는 '체험 삶의 현장'!
  • 송시현
  • 승인 2020.09.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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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이코노미 = 송시현 연극 연출가]

전쟁같던 아침시간이 지나고 초토화된 거실과 부엌을 뒤로 한채 올해 4살된 큰아이와 베란다 카페에서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코너를 제안 받고 뭔가를 시작한다는 겨자씨만한 두근거림과 설레임, 그리고 오만가지 생각이 모래폭풍처럼 몰아쳤다. 눈이 많이 꺼끌거렸다. 난 뭘 하는 사람이지? 

연극이 내 인생을 완벽하게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연극 이외엔 내 인생에 어떠한 것도 영향을 주지 못 하리라 생각했다. 그건 나의 오만방자한 생각이였고 개코같은 고집이였다.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육아. 

싱크대 개수대를 붙잡고 괴성을 지르는 내 모습. 그러다 아이를 안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하며 속삭이는 내 모습. 고양이 똥 치울 때면 숨을 참았지만 내 새끼 똥 기저귀 뒤적거릴 때는 해맑게 웃으며 똥도 예쁘다고 하는 내 모습. 

11개월 여아와 4세 남아, 육아 4년차... 찰리 채플린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아, 내 인생은 희극이였구나. 허허허허허허. 

전에 연극반 수업을 하며 아이들을 케어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육아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역시 오만방자한 개코였다. 결혼이 현실이라면, 육아는 현실의 <체험 삶의 현장>이다. 그 <체험 삶의 현장>이 앞으로 20년 넘게 남았으니 이건 희극이 아니면 매우 곤란한 일이다. 

배우 생활을 하며 배우라는 소명에 도움이 될까 시작한 극작 공부는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만드는 시작점이었다. 글을 쓰고 카메라 앞에 서며 연출이라는 직업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출은 본래 나의 시야보다 조금 더 넓고 객관적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줬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들이 하루하루 새로운 일상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허나 아이를 품고 기르는 육아는 내 어린시절의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조심스럽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는, 쉽지 않은 일상의 반복이다. 매일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에 고통스러워 몸부림 치기도 하지만 내 앞의 아이들의 숨소리는 그 모든 고통을 보상해 준다. 

많이들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아이는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 키우다 보면 둘이서 알아서 큰다고... 하지만 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이 하나 키우는 것이 '친구랑 PC방에서 편 먹고 열심히 게임하는데 갑자기 친구가 배고프다며 로그아웃해서 혼자 싸우는 기분'이라고 해보자.

그럼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은? '배고프다고 라면 먹고 돌아온 친구가 다시 접속했는데 상대팀 가서 나한테 궁 쓰고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는 심정'이랄까? 그런데 친구가 pc방 정식을 시켜 주는 거다. 그 순간엔 나쁜 놈은 아니구나, 싶었지만... 또 상대팀으로 가서 날 저격하는데 이번엔 상대팀 유저들이 모조리 나한테 순서대로 궁 쓰는 느낌이다. 

이제 둘째가 11개월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큰 아이는 거의 1년 동안 어린이집을 못 갔다. 코로나가 좀 잠잠해진다면 내년에 둘째는 어린이집을 갈 것이고 큰 아이는 유치원을 갈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나도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다시 딛어 나갈 수 있지 않을 까 몰래 꿈 꿔본다.

물론 나는 여전히 무대 위에 서는 사람이며 글을 쓰는 사람이고 연출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대 위에 서고, 글을 쓰며, 연출을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글] 송시현 연극 연출가. 이제는 '송수진'이 아닌 '송시현'으로 새출발하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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