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현 연출의 연극 아닌 육아] 팡! 팡! 팡!
[송시현 연출의 연극 아닌 육아] 팡! 팡! 팡!
  • 송시현
  • 승인 2020.11.02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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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기 전과 후 영화 취향에 대한 이야기

[크리에이티브 이코노미 = 송시현 연극 연출가] 여기저기 유혈이 낭자하고 나무엔 살점이 대롱대롱 매달린 영화 속 배경엔 다리를 질질 끌고 인간의 형체가 아닌 것들이 인간을 쫒으며 언어가 아닌 소리를 내고 있다. 또 다른 장면 속엔 사람들이 무리 지어 전투를 하고 있는데, 여기도 역시 팡팡 튀고 있다. 머리도 팡! 팔다리도 팡! 여기 저기 팡! 팡! 팡! 이다.

이렇게 유혈이 낭자한 영화를 봐도 그 잔혹성이나 폭력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그냥 그런 영화구나 아무리 과하더라도 그냥 저 감독의 스타일 이구나 하며 별 신경쓰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봤던 <두 번 죽는 여자>는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으며, 심지어 나의 첫 멜로 영화는 <바탈리언 3>이다. 아마 이때부터 좀비물을 좋아한 듯하다. 심지어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입덧의 고통과 시야 흐려짐의 고통을 <워킹데드>로 이겨내기도 했다. 

드라마 <워킹데드>의 한 장면 ⓒ AMC

그러나 슬래셔 무비와 좀비물, 느와르 액션 등 매우 거칠고 폭력적이였던 나의 영화 취향이 아이를 하나 둘 낳다보니 80% 바뀌었다. 완전히 바뀌었다고는 말 못한다. 사람이 어떻게 완전히 변하겠는가. 환경에 의해 서서히 성향도 취향도 신체도 바뀌어가는 거지.

뽀로로를 보며 바나나차차를 듣고, 바다나무를 보며 포니테일을 흔들고,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며 방귀파워를 외쳐대는 나를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요즘은 가끔 멜로영화도 본다. 드라마는 페이스북에서 클립으로만 보던 내가, 내키는 드라마가 있으면 완결 때 까지 기다렸다 아이들 잘 때 나눠서 본다. 심지어 매우 설레이는 마음을 두 손에 사뿐히 모아들고 말이다.

그리고... 슬래셔, 호러무비는 잘 못 본다. 그나마 좀비물은 가끔이라도 보지만 슬래셔나 호러무비는 못 본다. 이유는 정말 나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매운 음식 먹지 않아서 이제는 매운 음식을 아예 못 먹게 된 걸까?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여기저기 살점이 팡! 팡! 팡! 튀고 상대방을 향한 날 선 언어와 죽일 듯한 눈빛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여기저기 사탕이 팡! 팡! 팡! 튀고 달콤하며 정상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건 나뭇잎이겠지.

<바다나무>에 나오는 영어동요 '포니테일' 

아마도 이 모든 변화는 내가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된 후, 세상을 보는 시각이 아이들과 같이 보는 시각으로 조금 더 넓혀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쓴 작품들, 연출한 작품들을 기억해 보면 정말 칼바람이 휭휭 불어댔다. 냉정할 때는 대놓고 냉정했으며, 너무 차갑다 싶으면 따뜻함을 가장한 현실 속 고통과 욕망의 일그러짐만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스러울 정도로 표현해 두었다. 타인의 죄악에 손가락질하기 전에 당신의 온몸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죄악이나 먼저 닦아내라고.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었는데 그 시절의 나는 표현이 너무 거칠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도 지켜야 할 원칙은 있었다. 정당성도 없고 의미도 없는 유·소아·청소년의 출연과 희생, 성적 표현은 금지. 유·소아·청소년은 지켜야 할 대상이다.

영화와 매체에서의 의미 없는 유·소아·청소년의 죽음과 희생, 성적 농락과 학대는 내가 부모가 된 현재로서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큰 문제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당성 없이 자극적인 감정 소모와 시각적 효과를 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유·소아·청소년은 예술적으로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예술'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범죄로까지 보인다.

물론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도 이런 의식은 있었지만, 이전의 의식이 머리로 끄덕끄덕 아는 의식이였다면 지금의 그 의식은 온몸으로 행동하는 의식이다.

아동 성적 대상화로 논란이 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큐티스>

지금까지 나의 이야기는 부모가 된 후 사고가 무조건적으로 맞고 정답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고와 시각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정의에 대한 확고함이 생기는 일련의 개인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 이다.

또한 부모가 되기 이전의 내 모든 것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다. 왜냐하면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지내오고 살아가는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넘어지기도 많이 넘어지고 실수도 많이 했지만,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개념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며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취향의 이야기로 시작된 나의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의 창작자들과 현 사회의 어른들에게 아주 조금은 완곡한 언어로 부탁하는 말로서 끝맺음을 맺는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어찌 되었건 뭐라 합리화 시킬 어떠한 것도 없이 아이들은 어른들이 온 힘을 다해 지키고 보호하며 훈계하고 가르쳐야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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